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펫훌라흐 귈렌 (문단 편집) == 성향 == 귈렌은 튀르키예 동부의 에르주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이맘 고시에 합격해[* 세속국가인 튀르키예에서는 종교에 관한 업무를 공화국종교부(T.C. Diyanet İşleri Başkanlığı)에서 담당한다. 전국의 모스크(이슬람 성원)를 설립하고 폐지하는 일, 해당 모스크에 이맘과 뮈엣진([[아잔]] 및 쿠란을 낭송하는 사람)을 임명하고 퇴임시키는 일, 역사적 가치가 있는 종교 시설의 수리 및 보수, 금요일 예배의 설교 방침 등 종교에 관한 행정적인 업무를 수행하며, 모든 튀르키예 내 이슬람 성직자들은 공무원이다. 즉 개인이 모스크를 세우거나 하는 일이 불가능하며, 이런 사설 모스크에 들어와 IS나 말할 법한 주장을 설교하는 극단주의자들도 찾아볼 수 없다. 튀르키예 부자들이 자선활동으로 모스크를 지어서 기부하는 것도 엄밀히 말하자면 국가에다 기부하는거다.] 튀르키예 서부의 마니사(Manisa)에서 주로 활동했다. 처음 활동할 때부터 일관되게 [[케말 아타튀르크]] 이후 튀르키예 정부가 밀어온 [[세속주의]]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으며, 특히 국립학교 수가 적은 농촌과 개발수준이 낮은 아나톨리아 동부 및 내륙지방에 저렴한 사립학교와 학원을 설립해 인기를 끌었다. 사이드 누르시(Said Nursî)의 사상적 영향을 받아 귈렌을 따르는 이들은 귈렌과 함께 사이드 누르시의 사진을 함께 두기도 하는데, 이 사이드 누르시는 케말주의의 세속주의 강요와 점차 극단화되어가는 이슬람주의 모두를 거부하고 종교간의 대화를 추구했던 온건성향의 (단 반 세속주의적이고 보수적인) 철학자였다. 귈렌 또한 그의 성향을 따라간다. 기본적으로 귈렌의 사상의 핵심은 '''종교간의 대화'''와 '''신앙할 양심의 추구'''를 꼽는다. 귈렌 운동은 [[가톨릭]], [[개신교]], [[정교회]], [[불교]], [[시아파]] 할 것 없이 모든 종교와의 공존과 협력을 추구했으며, 일관적으로 강압적인 세속주의를 반대하고 양심적으로 종교를 믿을 권리를 요구했다. 때문에 1980년 군사쿠데타 당시 극우성향 반 세속주의자로 분류되어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군부에 잡혀가 고생 좀 했다. 현재 귈렌이 자신에게 씌워진 쿠데타 혐의를 부인하는 근거도 "그 시절 내가 얼마나 고통을 겪었는데, 미쳤다고 쿠데타하냐?" 이다. 귈렌의 성향 및 활동에 대해서는 [[http://fgulen.com/kr/|한국어로 번역된 웹사이트가 있다. 다만, 튀르키예에서는 접속이 불가능하다]]. [[비정상회담]]에서 튀르키예인 패널로 출연했던 [[에네스 카야]]가 귈렌 운동에 깊숙히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. 또한 에네스 말고도 한국에도 귈렌 운동소속 튀르키예인들을 의외로 쉽게 볼 수 있다. 재한 튀르키예인들은 케말주의 지지자, 에르도안 지지자, 귈렌운동 지지자의 3부류로 나뉘는데 이들은 서로 사이가 나빠서 공적으로는 어쩌다 한번 만나긴 해도 사적으로 교류는 잘 안하는 편이다. [[전미 농구 협회|NBA]]에서 활약하는 [[에네스 프리덤]]도 귈렌을 지지했다가, 에르도안 정부로부터 테러리스트 낙인이 찍혀 여권이 취소되었다. 결국 칸터는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2021년 미국 국적을 취득하였다. 튀르키예 정부가 귈렌의 조카를 체포했다.[[https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2D&mid=shm&sid1=104&sid2=233&oid=003&aid=0010526744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